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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봉오통 전투'

by 라이프마트사장 2024. 6. 16.

 

이번에는 원신연 감독의 작품이자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주연의 봉오동 전투를 살펴보려고 해요.

2019년 8월 7일 개봉작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의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시작해 볼게요. 

 

영화 '봉오동 전투' (2019년 8월 7일 개봉, 감독 원신연)

 

짧은 줄거리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단 이 말이야."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이란 맹목적인 목표 아래  작전을 시작한다. 독립군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승리를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여 그들과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하는 등 봉오동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활발한 움직임으로 일본이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며 활약을 하게 된다.

 

이런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심하게 흔들리게 되고 ... 비로소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봉오동 전투의 승리를 써 내려간다.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한 점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전투의 상황과 독립군의 전략, 일본군의 만행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주기도 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는 많은 찬사를 받았는데, 특히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황해철 역은 매우 깊이 있었고 몰입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는 평이 많다.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치열한 교전과  독립군의 전략적 기술이 생생하게 그렸기에 보는 내내 함께 긴장하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었으며, 또한 독립운동가의 인간적인 면모도 함께 보여주며 그들의 희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등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봉오동 전투"라는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용기와 희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점에서는 많은 관객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물론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은 우리에게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의 봉오동 전투는 어땠을까?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부터 6월 10일까지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는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전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 첫 번째로는,  3.1운동과 독립군의 형성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 통치에 민중의 저항은 더욱 거세져갔다. 이 운동은 국. 내외를 막론하고 한국 독립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일으켰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이동하여 무장 투쟁을 준비하게 되는 시작이 되었다. 그 당시 만주는 일본의 통제를 벗어난 지역으로, 독립군이 조직되고 훈련하기에는 그만한 장소가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만주 독립군의 움직임과 활동이 활발했다.

 

만주 지역에서는 이미 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군과의 무장 투쟁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투쟁하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청산리 전투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항일 전투 중 하나이다. 

 

봉오동 전투의 과정은?

 

봉오동 전투는 대한독립군(홍범도), 국민회군(안무), 군무도독부군(최진동) 등 여러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일본군을 상대한 전투를 뜻한다. 독립군은 봉오동 일대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활용하여 유리한 위치에서 일본군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일본군은 약 7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독립군을 공격하려 했으나 독립군은 이미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고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주로 봉오동 계곡 일대에서 벌어졌으며, 독립군은 일본군의 진격로를 차단하고 매복 공격을 통해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봉오동 전투의 결과

 

봉오동 전투의 결과 일본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약  150여 명의 사상자를 기록했지만, 독립군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한다. 

 

또한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 승리는 독립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무장 투장의 시작을 알리는 큰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독립운동의 사기를 크게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과 한국 독립운동의 역량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싶다.

 

한국 민족의 저항 의식과 독립을 향한 열망의 상징인 봉오동 전투,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영화를 다시 한번 본다면 미처 알지 못했던 큰 여운의 감정도 두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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